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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이천은 용감한 무신이자 뛰어난 과학자였습니다. 태종 때 무과에 급제했으며, 세종 때 왜구를 크게 무찔러 충청도 병마도절제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이천은 무예를 닦는 틈틈이 군함 만드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며 여러 기계장치를 연구했습니다. 세종은 이천이 금속 다루는 일에 재능을 보이자, 1420년(세종2)에 공조 참판에 임명해 금속 활자 만드는 일을 맡겼습니다. 그해 이천은 경자자를 발명했는데, 그 덕분에 인쇄 속도가 예전보다 4~5배 정도 빨라졌습니다. 그 뒤에도 이천은 금속활자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 1434년(세종 16)에 갑인자를 만들었습니다. 갑인자는 20만여 개의 활자로 이루어졌는데, 글자체가 몹시 아름답고 선명했습니다. 또한, 이천은 금속활자뿐 아니라 간의, 혼천의, 앙부일구 같은 천문기기를 만드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한편 무신으로서 평안도와 함경도를 침입한 여진족을 토벌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때 여진족에게서 배운 중국의 제철 기술을 이용해 무쇠를 부드러운 철로 만드는 기술을 익혔습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조선에 부족했던 구리 대신 쇠로 대포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처럼 이천은 우리나라 화약 무기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습니다. 장영실의 빛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천 역시 과학 기술 발전에 큰 공을 세우고 세종시대를 빛낸 훌룡한 인물입니다.

 

음악을 정비한 박연은 문신이자 음악가로, 호는 난계입니다. 태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 사헌부 지평, 공조참의등을 거쳐 예문과 대제학을 지냈습니다. 세종 때 악학별좌(악공들을 뽑아 훈련하던 관청의 종5품 벼슬)에 임명됐는데, 악기도감에서 낡거나 망가진 악기를 고치고 새로운 악기를 만드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박연은 음의 높낮이를 정하기 위해 쓰던 대나무관인 율관을 만들고, 1427년(세종 9)에는 편경(경석이라는 돌을 이용해 만든 타악기, 두께가 다른 돌 16개를 매어 달았음)을 제작했습니다. 또한 세종의 뜻에 따라 많은 악기를 만들고 아악(궁중 음악)을 정비했습니다. 한편 박연은 세종에게 '악보를 간행해야 한다''흐트러진 음악 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같은 상소문을 자주 올렸습니다. 박연이 쓴 시와 글을 모아 만든 책인((난계유고))에는 무려 39편의 상소문이 실려 있습니다. 박연은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악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세종이 사랑한 천재들 이천과 박연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과학기술과 음악에 관심이 있는분들의 참고 자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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